모든 것을

아나키 호소문

당신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남은 인생 동안 휴가를 떠나겠는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멈출 것인가? 윤리적인 은행과 정치가들에게 호소할 것인가?

어쨌든 이 세상을 지금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새로운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


개인들의 경제적 곤란과 심리적 갈등은 전지구적 격변과 재앙을 그대로 반영한다. 평생 동안 우리는 그 불을 하나씩 끄려 하지만 이들은 같은 근원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단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기존과는 다른 논리로써 접근해야만 한다.

무엇이든 
바꾸려면 
모든 곳에서 
시작하자 

shadow of a person climbing over a barbed-wire fence

시작은
스스로
결정
하는
것부터

자신의 형상에 따라 세상을 만들었다는 자유라는 유령이 이 세상을 맴돈다. 우리는 완전한 자기결정권을 약속받았고, 사회 제도는 이를 보장하는 것 같다.

만약 정말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겠는가? 엄청난 잠재적 가능성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관계,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을. 태어날 때 우리는 한계를 상대적으로 갖지 않았다. 순수한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거나 돌파구를 찾거나,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와 같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만 우리는 언뜻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다.

당신의 잠재력은 무엇에 가로막혀 있는가? 주위의 환경에 당신은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가? 관료제도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얼마나 일을 잘 수행 하는지에 따라 당신을 평가한다. 경제제도는 당신이 수익을 얼마나 내는지에 따라서 권력을 나눠준다. 군대제도는 당신이 권위에 복종할 때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고 선전한다. 이와 같은 제도들 속에 살아가는 당신이 삶을 뜻대로 살기에 도움을 주는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이미 완벽한 자기 결정 능력이 있다. 주어진 권리여서가 아니라 가장 악랄한 전체주의 독재정권조차도 이 자기결정 능력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기결정 능력을 행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제도들과 갈등이 일어난다.

1968 Olympics Black Power salute raised by the African-American athletes Tommie Smith and John Carlos during their medal ceremony at the 1968 Summer Olympics in the Olympic Stadium in Mexico City. As they turned to face their flags and hear the American national anthem, they each raised a black-gloved fist and kept them raised until the anthem had finished

스스로에게 
응답하자

회사 사장들과 국세청 관료들은 책임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완전한 책임이 있다면 과연 애초에 그들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역사를 놓고 볼 때 더 많은 해를 끼쳐온 것은 악의가 아니라 복종이다. 전세계 각 군대가 보유한 엄청난 무기들을 보면 남에게 복종하는 우리의 경향을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전쟁이나 학살 또는 억압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일단 스스로 그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의 가치관도 이와 같아야 한다. 수많은 통치자들과 규정들이 당신에게 맹종을 강요한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스스로 결정을 하지 않고, 대신 그 책임을 어떤 신이나 교리에 전가하고자 한다면, 누구에게 넘길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좋든지 싫든지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보통 사람은 가장 익숙하거나 편리 하다는 이유로 대세에 따른 결정을 내린다.

당신은 자신의 소신과 결정에 대한 최종 책임자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명령에 따르기 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응답해보자. 개인들 사이에 갈등은 있겠지만, 최소한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것이지 않겠는가. 타인의 계획에 맞춰가는 비극이 계속 쌓이지는 않을 것이다.

a worker in a gold mine confronts soldier keeping guard and grabs his rifle by the barrel as a crowd of workers watch

권력을 
얻으려 
하지 말고 
힘을 
추구하자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는 힘이 있다.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상 사들은 권력이 있다. 건물에서 살아가는 세입자들에게는 힘이 있고, 집문 서를 소유한 건물주들은 권력이 있다. 강물은 힘이 있고, 댐 건설 허가권은 권력을 갖는다.

자체는 본질에서 억압적인 것은 아니다. 여러 종류의 힘들이 우리를 해 방 시킬 수 있다. 사랑하는 이를 아껴주려는 힘, 갈등을 해소하고 자기를 방 어하려는 힘, 침을 놓거나, 돛단배를 조종하거나 서커스 그네를 타는 힘 등 이 그렇다.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타인의 자유도 증진시킬 수 있는 것 이다.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람은 모든 이들에게 선물이 된다.

반대로, 권력은 힘을 빼앗는다. 권력을 얻기 위해 다른 이로부터 힘을 빼앗 는다면 당신도 똑같이 당할 것이다. 권력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군인은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고, 장군은 대통령의 명을 따르고, 대통령은 헌법에서 권위를 얻는다. 신부는 주교를 따르고, 주교는 교황을 따르며, 교 황은 성서를 따르고, 성서의 권위는 신으로부터 나온다. 사원은 사장을 따 르고, 사장은 고객을 모시며, 고객의 권위는 돈에서 나온다. 경찰은 판사로 부터 영장을 발부받는데, 판사의 권위는 법에서 나온다.

이와 같은 피라미드 구조의 꼭대기에는 남성, 백인, 재산 등이 있지만, 우 리는 폭군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거기엔 그저 사회구성체가 있을 뿐이다. 인 류가 최면에 걸려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힘과 권력은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복종을 함으로써 그 대가로 권력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유가 없다면 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at night, lit by streetlights, young protestors in Turkey form a fire-brigade-line to transport cobblestones to the front lines of a conforntation with police

신뢰
   기반한
관계
    만들자

권위와는 반대로, 신뢰는 받는 이가 아니라 신뢰를 주는 사람에게 중심을 둔다. 신뢰를 얻은 사람은 권위가 필요 없다. 그리고 신뢰를 얻지 못한 이에 게 권위가 주어져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나 기업 사장만큼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 또 누가 있는가?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의 만족을 위해 갈등을 해소 하려고 할 것이다. 서로에게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위계적 관계에서는 이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가 갈등을 억누 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우정은 동등한 관계이고 상대방의 독립성(다름)을 존중하며 서 로 돕고 서로에게 도전하는 유대 관계다. 이런 우정은 모든 관계들을 평가 하기에 좋은 기준이다. 부모 자식 사이나 능력이 다른 관계 역시 유대감과 신뢰만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관계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외부에서 인 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 반대로 권위적인 관계에서는 외부가 언제나 이미 개입하고 있다.

국적과 불법체류, 재산과 빚, 기업과 군대의 지휘체계 같은 강요된 통제장 치가 없다면 자유연합과 상호부조에 기반한 관계를 새로 만들 수 있을 것 이다.

kid hugging tree in forest, looking up into the canopy

개인
    전체
조화시키자

“타인의 권리가 시작되면 나의 권리는 끝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논리에 따르면 사람이 많을수록 자유가 줄어든다.

그런데 자유는 이런 개인 권리들의 작은 거품 방울들이 아니다. 자신과 타 인을 이렇게 쉽게 구분할 수 없다. 하품과 웃음은 전염적이다. 열정이나 절 망감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사람은 무심결에 내뱉는 상투적인 말과, 저절 로 흥얼거리는 노래들과 옆 사람한테서 느끼는 기운과 주변의 분위기 등 등으로 구성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오염된다. 화 학약품을 사용하면 우리가 마시는 물 속으로 스며든다. 모두가 받아들이는 이 체제에서 살아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하지만 타인이 이 체제에 도 전할 때 당신 역시 내 현실을 새로 만들 기회를 얻는다. 당신의 자유가 시 작될 때 우리의 자유가 시작되고, 당신의 자유가 끝나면 내 자유도 끝난다.

우리는 동떨어진 개인들이 아니다. 공생하는 수천 종의 생물로 구성된 것이 인간의 신체다. 신체는 굳게 닫힌 요새가 아니라 영양분과 미생물이 끊임 없이 순환하는 과정이다. 우리 몸은 수천 종의 생물들과 공생하는 것이다. 인간이 내쉰 공기를 식물이 흡수한다. 몰려드는 이리 떼나 개구리 우는 저 녁과 같은 이런 시간, 공간, 현상은 사실 우리의 신체만큼이나 개별적이고 단일화되어 있다. 우리는 진공 상태에서 이성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주의 밀물이 우리에게 밀려든다.

언어는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하다. 사상과 욕망도 마찬가지 다. 우리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사상들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우 리는 모두 시공을 초월하는 대립적 힘의 혼돈으로 구성된다. 이 중 어떤 힘 을 키울 것인가를 선택해가면서 우리는 만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

자유는 어떤 소유물이나 재산이 아니라 관계다. 자유는 외부에서 보호해주 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합의를 위한 합 의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갈등이 일어나든 합의에 이르든 우리 삶 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승자 독식의 경쟁으로 변형시키거나 합의를 강제 할 중앙 권력이 없는 한 말이다. 갈등도 합의 만큼이나 우리 삶의 품격을 높 일 수 있다. 세상을 수 많은 작은 세력권으로 조각 내지 말자. 그대신 우리 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잘 활용하자.

two protestors, adorned with gas masks and balaclavas, dance the tango together in the street

욕망
 해방
   시키자

이 사회속에서 자라난 우리들은 열정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라 광고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안다. 이 열정은 우리가 시장경제의 다람쥐 쳇바퀴에 서 계속 달릴 수 있게 만드는 선전과 광고로 형성되었다. 이 세뇌 덕분에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자기를 불행하게 할 일을 하면서도 꽤 만족감을 느 낀다. 우리는 고통에 잠겨 있지만 이런 만족감이 고통을 밀폐해버린다.

정말 자유로워지려면 욕망을 일으키는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어야 한다. 해방이란 현재 우리가 가진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 다. 해방이란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욕 구들과 욕구들이 이끄는 현실도 변경시키는 것이다. 이는 강요하고, 지배 하고, 소유하는 즐거움에서 벗어나 복종과 경쟁의 체계에서 해방되는 쾌 락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이 중독에서 벗어나 본 경험이 있다면 욕망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A anonymous man stands in front of a column of tanks on June 5, 1989, the morning after the Chinese military had suppressed the Tiananmen Square protests of 1989 by force, who later became known as the Tank Man. The tanks manoeuvred to pass by the man, and he moved to continue to obstruct them, in something like a dance.

저항으로
시작하자

편견으로 가득찬 완고한 이들은 구조적 문제의 원인으로 특정 집단을 탓한 다. 예를 들면 끊임없이 이익만을 찾는 자본주의에 대해 유대인 탓으로 돌 린다. 경기가 나쁘면 이민자를 탓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정치 권의 부패에 대해 정치인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체제 자체가 문제인 것 이다. 누가 집권해도 또 같은 불평등을 당하고 수모를 겪는다. 문제는 이 체제가 고장났다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잘못된 이 체제가 작동하고 있 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다.

우리의 적은 인간 자체가 아니다. 우리를 서로에게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게서 멀어지게 하는 제도와 습관들이다. 한 개인의 마음 속에 내재된 갈등 이 사람들 사이의 갈등 보다 더 큰 법이다. 현대의 문명을 갈라놓는 벽은 우 정 관계와 개인의 마음도 갈라놓는다. 이 충돌은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것 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계와 생활 방식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체 제 내의 만연한 역할을 거부할 때, 우리는 잘못된 벽을 열고, 타인도 같은 상태로 초대할 수 있다.

지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지배의 세부 사항을 더 공정 하게 하는 것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바꾸는 것, 또는 개혁으로 이 체제를 더 안정시키는 것은 최고의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시위를 하는 이 유는 더 정당한 규칙이나 통치자를 요구하기 보다, 우리만의 힘을 찾아 이 를 발휘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용기를 내서 공권 력이 우리의 자발성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적과 군사적 충 돌로 맞장뜨는 전쟁을 일으키자는 것이 아니라 불복종을 확산시키자는 말 이다.

사람의 마음이 변할 때까지 토론하고 교육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 상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사람한테 구체적인 선택을 제시하지 않은 한, 토 론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론적 토론과는 거 리를 둔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지면, 판이 커지고 서로 반대편 사이에서 의미있는 차이를 볼 수 있게 되고, 결국 한 편에 서게 된다. 우리는 만장일 치를 할 필요도, 세상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나 정확한 목적지로 가는 지도 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새로운 길로 출발할 용기가 필요하다.

a cop dressed in fancy riot gear leans out of his open patrol car door and uses a camcorder to record protestors who are not pictured

문제는
    통제다

관계에서 학대가 일어날 때 어떤 징후들이 포착되는가? 학대하는 사람이 상대의 행동과 생각까지 통제하고, 상대가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 을 가한다. 또한 협박을 하거나 폭력을 사용한다. 계속해서 상대를 감시하 고 학대자에게 의존적 상태가 되게 하는 것 등이다.

개인간의 학대 뿐 아니라, 국세청이나 국가정보원 등 우리의 사회를 통치 하는 대부분의 기관들도 관계의 학대에 해당된다. 이런 제도는 인간이란 감시하고 관리하고 다뤄야만 되는 대상이라는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강하고 철저한 통제가 필 요하다. 공권력의 영역 한 쪽에서는 개개인에 대한 통제가 더욱 난폭해진 다. 무인비행기의 공격, 경찰 특수기동대, 징벌방 감금, 피부색과 인종 등을 기반으로 사람을 용의자로 만드는 수사 기법 등이 그 예이다. 통제는 이 사 회의 기반을 이루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 면 신용 등급 평가와 보험료를 계산하는 방정식, 통계 정보를 얻고 이것으 로 도시 계획을 짜는 방법, 결혼 정보 사업,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와 사회 관계망의 구성 등이 모두 통제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이는 온라인 활 동을 감시하는 국정원과 같은 기관보다 우리의 현실을 더 철저히 통제한다.

의 무한한 가능성이 컴퓨터의 0과1로 이루어진 2진법으로 환원되면 우 리가 살고 있는 체제와 상상할 수 있는 삶 사이에는 더 이상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 이는 완벽한 자유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의 정반대에 도 달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이미 제시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창조하는 것이다.

a mustachioed cop in riot gear wearing aviator sunglasses stands guard in fron of severl Ku Klux Klan members in full robes, one of whom carries a American flag

문제는
위계질서
이다

관계의 불평등을 강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는 법원과 같이 중앙집권적 장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있다. 또는 성별 역할 체계나, 학벌과 족벌과 같이 더 비공식적 으로 작동하는 것도 있다.

이런 불평등한 위계질서 중 몇몇은 이제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왕권이 하늘의 뜻이라고 몇백 년간 믿어왔었고, 다른 사회를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적도 있었다. 오늘날 왕 권이 하늘의 뜻이라고 믿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불평등이 없는 삶을 상상조 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아직 깊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누가 소유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위계질서가 실제 존재하지만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황제의 존재가 자연스럽 거나 필수적이거나 이롭지 않은 것처럼 주인과 사장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거 나 필수적이거나 이로운 것이 아니다.

불평등과 서열을 정당화 시키는 이 모든 방식은 서로를 강화시키며 함께 발달해 왔다. 예 를 들면 자본주의 역사는 백인 우월주의의 역사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식민지, 노예제도, 그리고 노동자를 분류하고 아직도 누가 감옥이나 판자촌에 살지를 정하는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없었으면 자본주의는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성 차별은 상호 작용을 하면서 양립된다. 자본주의에서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는 (주로 남성) 임금을 받지만, 가정에서 이 노동자를 낳고 기르고 매일 충전시키고 평생 돌봐주며 신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가사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들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감춰진다. 그래서 여성은 일할 때도 임금을 적게 받게 된다. 노동자 간에 만들어진 이 서열은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킴으로 노동자와 자본 사이에 위계를 낳는다. 위계질서는 여러 차원이 있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나라와 지역간 경제 적인 불평등, 국적과 법 제도, 인종, 민족과 성 차별, 이 모든 요소들이 상호 작용한다. 아 이를 키우는 이주여성 가사노동자가 (혹은 결혼이주여성) 마주치는 상황이 그 예시이다.

이러한 차별의 문제는 개인 사이의 편견 문제를 뛰어넘는 체계적인 문제이며, 제도와 권 력과 관련되어 있다. 국가와 사회의 또 다른 위계질서가 없었다면, 개인의 편견만으로 체 계적인 백인/남성 우월주의를 강요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 체제의 최상위에 흑인 이나 여성 대통령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현 체제를 안정시켜 규칙을 정당화한다.

다시 말하자면, 경찰이 있는 한 경찰은 누군가를 괴롭힐 것이다. 감옥이 있는 한 누군가는 감옥에 가게 될것이다. 빈곤이 있는 한 누군가는 빈곤에 빠질 것이다. 위계에 기반 둔 사회 에서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자리만 바뀐다고해서 근본 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판을 바꿔야 한다!

a grouple of people sits upon a tall boundary fence they have climbed

    문제는
       경계를
나누는 것이다

만약 외국에서 침략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와 숲을 파괴하고, 강을 오염 시키고, 어린이를 강제로 납치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한다면, 누가 이 침략에 맞서서 무장투쟁을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가 같은 짓을 할 때, 애국자들은 기꺼이 복종하고 재산과 자식까지 바친다.

국경은 우리를 보호하지 않고, 우리를 분리시킨다. 국적에서 배제된 이들 과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고, 포함된 이들 사이에서도 현실적 차이를 모 호하게 한다. 가장 민주적인 정부라도 참여하는 이와 배제된 이, 합법적인 사람들과 불법적인 사람들의 분리를 기반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발생지라 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의 남성 인구 뿐이 었고, 미국에서 근대 민주주의 창립자들은 노예를 소유한 주인이었다. 그 리고 현재에도 국적과 체류권 제도는 포함된 이와 배제된 이 사이에 차별을 낳고, 수 많은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취약하고 힘들게 만든다.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은 울타리를 계속 넓혀 전세계를 거대한 민주 주의 체제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은 체제 구조에 배태되어 있 다. 이 사회 각계 각층에 수 많은 미세한 경계가 나뉘어져 있어서 우리를 권 력을 가진 자와 권력을 가지지 않은 자로 분리한다. 보안 검색대, 신용 등급 평가, 데이터베이스 암호화, 상품 등급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배제하지 않 으며,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닫힌 공동체에만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열 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a woman of asian ethnicity works as a mannequin factory stocking a shelves that are full of caucasian mannequin heads

문제는   
대의제   
(代議制)

직접 행동할 때 힘이 생긴다.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당신의 이해관계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뭔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대의제를 통하거나 그 형식을 차용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소외되고, 스스로의 힘으로부터 소원해진다. 이런 대의 정치는 스스로의 주체적인 힘을 왜곡시 키고 결국 나에게 적대적으로 변질된다. 예를 들면 어떤 정치가에게 실망 해서 좌절한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의 삶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잃 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경찰의 폭력 사건은 우리가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 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는 어두운 경향을 잘 보여준다.

정보통신 시대에는 각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비서 가 되어야 한다. 나의 평판은 외모에 집중되고, 결국 흡혈귀처럼 나의 기력 을 빨아먹는다. 만약 우리가 시장에서 팔리기 위해 경쟁하지 않으면 그래 서 서로에게서 고립되지 않는다면, 자기의 이미지를 꾸미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어떤 것으로 환원시켜 단순화시킬 수 없는 존재다. 대리인, 대 의원이나 어떤 추상적인 것도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 인간을 인구로 환원 하고, 날것 그대로의 경험을 데이터로 치환하면서 우리는 소중하고 특별한 것들에 대한 안목을 잃어간다.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 직 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간 및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스스 로 해쳐나가는 것이다. 대표나 대의정치가 나를 대신해 할 수는 없다. 스스 로 해야 한다.

a portly politician talks into a bouquet of press microphones that surround him

문제는
    지휘자이다

리더십이란 한 집단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행위에 대해 자주성을 갖고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행위 능력을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특성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지 도부에 의존하고 휘둘릴 것이다. 사실 모범적인 지도자가 부패된 지도자만 큼이나 위험하다. 왜냐하면 리더가 가진 훌륭한 자질 때문에 리더십 자체 의 정당성이 생기고 동시에 타인의 복종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 더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진다.

경찰이 시위에 오면 먼저 항상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지도자 없이 공동 행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지도자가 약점이기 때문이다. 16 세기에 이른바 신세계에 도착한 정복자는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책임자가 있다고 답을 한 곳에서는 몇 세기는 더 빠르게 원주민들이 진압되었다. 지 도자가 있으면 대리인을 임명하거나, 새로운 지도자로 바꿔 버리거나, 인 질로 잡아갈 수도 있다. 지도부에 의존하는 것은 아킬레스건 같은 치명적 인 약점이다. 최악의 경우는, 권력체계와 위계질서에 반대하는 이들이 이 와 똑같은 구조를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의제에 따라 책임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최고의 상황일 것이다.

large conference table at which world leaders are seated, surrounded by press and their minions, a summitt meeting with greek columns of marble and a traditional fresco in the dome above

문제는
    정부다

정부는 권리를 약속하지만 결국엔 자유를 빼앗는다. 권리의 개념은 권리를 승인하고 보장할 중앙 정부나 권력 장치를 암시한다. 그런데 국가가 무엇인 가 보장할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빼앗을 권력도 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정부가 강화되면 이 정부가 새로운 문제를 더 많이 일으킨다. 정 부가 갖는 힘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가 양도한 우리의 힘이다! 루브 골드버그의 장치와 같은 복잡하고 비실용적 인 대의 체계를 통하는 것보다 우리가 직접 행동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

가장 자유민주주의적인 체제 역시 가장 포악한 독재 체제와 공통의 원리 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은 물리력의 독점이며, 이런 체제를 보장하기 위 해 권력의 집중이 따른다. 이 체계를 작동하는 관료가 누굴 따르느냐, 왕이 냐, 대통령이냐, 유권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법, 관료, 경찰은 민주주 의보다 먼저 생겼다. 그리고 민주주의든 독재든 같은 방법으로 작동한다. 다만 민주주의에는 우리가 이것을 관리하는 사람을 뽑기 때문에 ‘우리것’ 과 같이 보일 뿐이다. 우리를 탄압할 때도 말이다.

독재 정부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체제가 한 세대 전부를 죽이고, 감옥 에 보내고, 사람들을 세뇌시켜도 다음 세대는 자유를 위한 투쟁을 새로 창 조할 것이다. 그러나 체제는 모든 이에게 다수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할 기회를 약속하면서 서로 세력을 겨루게 함으로써 결국 사람들은 서로 싸 우다 체제로 영입된다. 더 많은 사람이 국가의 강제 제도들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크다고 믿을수록 제도의 대중적 지지도도 높아진다. 이는 전 지구 에 민주주의가 퍼지는 이유인 동시에 부와 권력의 분배 불균형이 믿기 힘 든 정도로 심해질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 말 고는 다른 정부 체제가 이런 위태로운 상태를 안정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이 중앙집권화 되면 사람들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남을 이기고 남 을 지배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는 자치를 위한 투쟁이 권력에 대한 경쟁 으로 변한다.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고 내전을 겪는 수 많은 나라를 보라. 집권층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자국이든 외국에서든 전쟁을 해야만 한다. 해외에 파병된 군대는 다음 번엔 국내에 배치된다.

사회에 서열과 불평등이 있으면 이것은 항상 지배층이 권력을 집중시키는 도구가 된다. 이른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체제를 개혁해나가는 것 은 결국 우리를 위협하는 이에게 보호를 요구하고 이들에 의존하는 것에 불 과하다. 권력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으면서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방법은 자주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수평한 관계망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권력이 우리를 더이상 우습게 보지 못할만큼 충분한 힘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그 권력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이미 갖게 될 것이다.

자유로 가는 길은 자유 밖에 없다. 모든 작용력들이 모여 병목현상을 일으 키는 정부가 아니라 우리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필요하다. 유일한 합법성의 형식 보다 여러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 다. 정부의 본질적 특성인 강압성 대신에 자율을 촉진하는 의사 결정의 틀, 그리고 이를 지배하려는 것을 막는 방어적 실천 관행이 필요하다.

a chauffeur holds open the door to a large Audi as a wealthy businessman exits a helicopter and proceeds across the helipad towards the car

문제는
    이윤이다

은 불평등을 야기하는 최고의 기제다. 돈은 추상적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대표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돈은 보편적이다. 돈 이외에 아무 공통성이 없 는 사람들도, 돈을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 들인다. 돈은 특정 개인과는 상 관이 없다. 세습적 특권과 달리 순간적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 될 수 있다. 돈은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위계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 이동이 쉬울수록 위계 사회는 안정된다. 많은 사람이 독재 정부에는 반항하지 만 자유 시장의 권위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모든 가치들을 유일한 매개체로 바꾸면 되찾을 수 없는 우리 삶의 순간들이 의미를 잃게 되고, 권력의 계산법에나 쓰일 추상적인 상징으로 변모한다. 이러 면 재정적으로 수량화할 수 없는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삶은 금융 이득을 위한 쟁탈전이 되어버린다. 내가 누구를 팔아 먹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팔아 먹는다. 이렇게 각각 개인은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게된다.

이익을 낸다는 말은 남들보다 사회적 자원을 더 많이 갖고 통제한다는 말이 다. 우리 모두가 이익을 낼 수는 없다. 한 명이 이익을 내면 비례적으로 누군가 는 잃게 된다. 투자자가 사람을 고용하고 흑자를 낸다면, 즉 투자 수익이 있 다면, 이는 노동자가 일할수록 그들과 투자자의 사이에 격차가 벌어진다는 말 이다.

이윤 추구로 돌아가는 체제는 한편에 부를 집중시키면서 다른 한편에는 빈곤 을 양산한다. 경쟁에 대한 압박은 이전 체제보다 혁신을 가져오지만, 격차의 폭을 넓게 만든다. 옛날에는 말 타는 사람이 보행자를 지배했는데, 오늘날에 는 스텔스 폭격기가 운전자와 노숙자 위로 날아다닌다. 그리고 모두가 하고 싶 어서가 아니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 모든 노동의 결과가 비극이다. 기후변화는 가장 힘 있는 자본가조차 멈출 수 없는 일련의 재앙 중 에서도 최신판이다. 자본주의에서 사업가는 위기를 해결해 보상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위기를 이용해 댓가를 챙긴다. 자본주의가 위기로 인해 스스 로 무너지는 일은 없다. 파괴와 빈곤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나 빠질수 있는 것이다.

an abandoned building, now occupied, with protest banners in the window, being used as community organizing location

문제는
    재산이다

자본주의의 기초는 재산권이다. 이것은 귀족과 왕권 시대에서부터 이어 져내려온 개념이자 사회 구조이다. 자산은 오늘날 더욱 빨리 이동한다. 그 러나 그 개념은 같다. 즉 재산을 소유한다는 뜻은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해 서 토지과 자원에 접근하는 인위적인 불평등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국가 없이도 재산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재산권은 이를 강요할 중앙집중화된 권력 없이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역 설적으로 이런 중앙권력이 있는 한 정말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내가 버 는 돈은 국가에서 주조되며 세율과 인플레이션에 좌우된다. 자동차를 취득 하고 이용할 권리는 정부 기관이 결정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은 대출을 해준 은행이 소유한다. 혹시나 대출을 받지 않고 산 집이라도 결국 국가의 토지수용권은 사적 소유권을 무효화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정부는 국민을 착취함으로서 존재한다. 주는 것 보다 항상 더 많이 가져간다. 시장 경제는 우리가 남을, 그리고 남이 우리를 착취하면 거기에 댓가를 줄 뿐이 다.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보장은 사회적 유대 관계에 있다. 안전을 위해 스 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상호 부조망이 필요하다.

이나 재산권이 없다면, 사물과의 관계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결정할 것 이다. 오늘날에는 정반대다. 사물과의 관계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결정한 다. 재산권 없이 살자는 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을 잃는다는 뜻이 아니다. 증 권시장의 붕괴나 경찰에 의해 필요한 것들을 빼앗기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말이다. 관료의 말을 듣는 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서로를 이용하는 대신에 상호의존적 이익을 추구하자.

악당과 깡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재산권이 없는 사회다. 왜냐하면 재 산권이 없으면, 사람은 존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존재하지 않으 면 사람은 남을 매수하는 것 말고 남의 삶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익이 존재하지 않으면 행동의 보답은 행동 자체에 있기 때문에 의미 없고 파괴적인 행동에 대한 동기가 생기지 않다. 현재 체제는 희소성이라는 경제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삶에 정말로 중요한 것 (열정, 동지애, 관대함, 용기 등)은 희소하지 않고 풍부하다. 진실로 희소 한 것은 경쟁과 결핍을 강요하고 두려움을 주입하는 공권력이다. 우리가 투쟁하는 의미는 사랑의 관대함으로 결핍의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이다.

a protestor with his face concealed in the act of throwing a lit molotov cocktail during a protest, in front of a huge concrete wall

the
 Last Crime
        마지막 범죄

모든 체제가 이전의 체제를 해산시킨 범죄를 기반으로 한다. 이후 사람들 은 새로운 체제를 당연시하면서 이를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미국을 개국 한 범죄는 영국 왕실의 권위에 대한 반항이었다. 새로 올 사회의 창립 범죄 는, 만약에 인류가 현재의 사회에서 벗어날 때까지 살아남으면, 현재의 법 과 제도를 없앨 것이다.

범죄의 범주는, 그것이 좋던 나쁜 것이던 간에, 일정한 사회의 한계를 벗어 나는 것을 뜻한다. 모든 체제는 그 체제에 의해 포획될 수도 통제될 수도 없 는 것들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모든 체제가 자기 파괴의 씨를 담고 있다.

영원한 것이 없다. 제국도 문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재의 체제를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합법과 불법, 지배하는 이와 지배받는 이, 이런 분리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지막 범죄는 무엇이 될까?

아나키는 강권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지는 질서로 생기는 현상이다. 자 유다.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 자신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열대우림이나 친구들과의 모임 그리고 우리의 신체 등 자연스럽고, 자발적 이며, 자유롭게 대사가 일어나는 모든 과정과 현상이 바로 조화로운 아나 키다. 이는 항상 변화한다. 반대로 상명하달식 통치는 강제와 협박만으로 유지된다. 불안정한 교실의 규율, 농약을 뿌려대며 키우는 유전자변형작물 의 농장, 초강대국의 취약한 패권 등이 그 예이다.

아나키즘은 모두에게 완전한 자율성이 있다는 사상이다. 어떠한 법이나 정부, 의사결정 과정이 실제 사람의 요구와 욕망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사 람은 서로 만족하는대로 관계를 맺으며, 필요할 때에 남에게 좌우되지 않 게 맞설 자유가 있어야 한다.

아나키즘은 신조나 계획된 청사진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같이 잘 적 용한다고 할 때만 작동하는 체계가 아니다. 또한 공산주의처럼 먼 미래에 만 실현 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바로 여기 지금 실행할 수 있는 행동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어떠한 가치관이나 행동을 계획함에 있어서 이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어떻게 힘을 배치하는가?”

아나키스트는 모든 서열에 반대한다. 소수 권력자의 손에 힘을 집중시키 기 위해 통용되는 모든 것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모든 기제들에 반대한다. 닫힌 체계에 맞서 우리 앞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우리의 마음 속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혼돈을 즐긴다.

다양한 지배제도와 기제들의 공통점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개별적인 투쟁 들이 우리 자신들보다 더욱 대단한 것임이 명확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 은 우리를 연결시킬 것이다. 이 연결관계에 기반을 두고 모인다면 모든 것 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투쟁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 능력에 대한 감각 도, 기쁨에 대한 민감도도, 우리 인생의 의미도 다 바뀔 것이다. 각자 새로 운 논리대로 행동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이와 지배받는 이, 이런 분리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 지막 범죄는 무엇이 될까?

모든 것
바꾸려면
어디에서든
시작하자!

오래된
   세상
집착하지 말자